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9. 겨울방학 (2015년 12월)


- 9. 겨울방학 (2015년 12월)

 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됐다. 본격적으로 씀에 집중해 볼 계획으로 기숙사에 남았다. 학기가 마무리되기 전에 기필코 앱을 완성시키고자 했던 것도 이런 계획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학기가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앱을 완성시키고 방학기간 동안 몰아붙여서 승부를 보자는 심산이었고, 꽤 주요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할 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패턴이다. 학기가 진행되는 약 3개월은 프로젝트를 1차적으로 완성하기에 적당한 시간이고, 방학은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 학생들만의 특권 같은 시간이다. 물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경우 더 긴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리 정해둔 완성 혹은 출시까지의 기간이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본인들의 역량에 맞는 일인지 냉정하게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한 프로젝트를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해보고 결정하면 된다. 거창하게 회사를 만들거나 사무실을 얻거나 할 필요도 없다. 마음 맞는 친구 몇 명과 말 그대로의 프로젝트를 정해진 기간 동안 해보면 된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학교나 정부에서 ‘창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학생들을 부추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추기는 주체와 부추김을 당하는 대상 모두가 ‘창업’이라는 단어로 인해 본질에서 멀어지기가 너무도 쉽다는 것을 몇 년간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속에서 불꽃이 튀었고, 이것을 함께 할 친구 혹은 선후배가 있다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기간이 정해진 프로젝트를 통해 승부를 보자. 그것 외에 프로젝트를 방해하는 언어들이 있다면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리는 것이 좋다. 

 방학이 되면서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으로부터 독립하기로 결정했다. 걱정 어린 반대에 무릅쓰고 원하는 일을 하겠다면서 그것을 위한 생활비를 부모님께 받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2월 당시 통장에 약 50만 원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윤재형도 유일한 수입원이었던 과외를 그만두었던 시기여서 돈이 없었다.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 서버 운영비용, 프라이머 관련 일로 함께 서울에 오가는 비용 등 다양한 지출로 잔고는 3주 만에 바닥났다. 다행히 일주일 후에 윤재형이 그전에 해둔 디자인 외주 비용이 입금되면서 그나마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 사이 일주일 동안은 1+1 라면을 주식으로 현실 만 원의 행복을 찍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량한 얘기들이 많지만 그때는 마냥 즐거웠다. 하루는 컵라면만 먹기엔 허전해서 약간의 사치를 부려 양파링을 같이 샀다. 뜬금없이 양파링을 컵라면 국물에 찍어 먹어보고는 뜻밖에 맛있음에 감탄하며 신나했었는데, 지나고 나서는 이제 그럴 일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다. 

 씀 앱을 개선하고 추가 업데이트를 준비함과 동시에 씀에서 작성된 글을 모아 책으로 제작해서 전국에 독립 책방을 통해 판매했다. 내가 만든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숫자가 계속 늘어간다는 것과 출시 전부터 꿈꿔오던 '씀의 글로 책을 제작하는 일'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설레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용자 규모가 조금씩 늘어갈수록 감사하고 설레는 기대감과 함께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도 동시에 커져갔다. 10명에서 100명, 100명에서 1,000명, 1,000명에서 10,000명 … 규모가 한 단계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문제들과 마주했다. 땜질하듯 겨우겨우 상황을 모면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적절한 해결 방법을 알지 못해 시간이 지체될 때마다 무거운 압박감을 느꼈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버텨나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출시 초기에 우린 이대로 끝이구나 했던 순간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 필요한 키 파일을 잃어버렸을 때이고, 다른 한 번은 약 2만 명 정도 사용자들의 글을 모두 지워졌을 때였다. 그 키 파일을 잃어버렸다면 더 이상의 업데이트를 진행할 수 없어서 몇 만 명이 다운로드했던 앱을 지우고 새롭게 올려야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의 사용자 수, 순위, 리뷰 등의 기록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 다행히 다시 찾긴 했지만 정말 아찔했던 기억이다. 이것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한순간에 사용자들의 글이 모두 사라졌을 때였다. 여느날처럼 새로운 기능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던 새벽이었다. 윤재형이 잘 못 입력된 글 데이터 한 줄을 지운다는 것을 실수로 테이블을(관계형 데이터베이스와 플랫 파일 데이터베이스에서 테이블(table)은 세로줄과 가로줄의 모델을 이용하여 정렬된 데이터 집합(값)의 모임이다.) 통째로 지워버렸다. 그땐 그런 실수를 방지할 만한 기초적인 장치들도 되어 있지 않았다. 망연자실했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어서 몇 분간의 정적이 이어졌다. 정말로 이대로 끝이구나 싶었다. ‘그래, 지금까지의 행운이 말도 안 되긴 했지. 아쉽긴 하지만 우린 여기까지구나.’ 이런 자포자기한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당시에 이용중이던 호스팅 업체(서버를 대여하는 서비를 하고 비용을 받는 업체) 긴급 장애 대처 서비스에 전화했다. 다행히 매일매일 자동으로 서버에 데이터를 백업해두고 있었다. 약 4시간 정도의 데이터를 제외한 나머지를 복구할 수 있었다. 소중한 글을 잃어버린 사용자분들 한 분 한 분께 사과드린 후 상황을 수습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몸으로 부딪히며 지금까지 왔다. 그때 우리가 그렇게 망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순간들을 여러 번 거치면서 조금씩 멘탈도 단단해지고 여유도 생겼다. 미래의 있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우리가 혹은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가 항상 걱정이었는데, 자연스레 그런 걱정은 의미가 없고 순간 순간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얼마전 크게 공감했던 소설가 김연수님이 젊은 소설가들을 향해 쓴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그걸 해라."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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