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8일 금요일

앱스토어 세대 (App Store Generation) - 3. 첫 번째 전환점

1. 앱스토어 세대의 시작
2. 학교 창업팀

- 3. 첫 번째 전환점



 스무 살, 스물한 살 이맘때의 장점들 중 하나는 그때까지의 인생에서 딱히 쌓아둔 것이 많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일에 뛰어들거나 기존에 정해둔 방향을 전환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방어적인 결정들을 하는 듯하지만 말이다. ) 이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한 것인지 내가 다닌 학교는 전교생이 '기초과정부'라는 공통과정 1년을 거쳐 2학년 때 세부 전공을 정하도록 했다.

 원래는 2학년이 되면 기계과를 갈 계획이었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항공 우주 관련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공부한 후 한국에도 Space X 와 같은 회사를 창업하겠다는 나름의 원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실제로 와서 경험해보니 우주를 개척하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너무도 막막해 보이는데 모바일 앱으로는 당장이라도 무엇인가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고등학교 때 당시 앱 개발의 꿈을 잠시 마음에 묻어둔 것처럼 우주 산업에 대한 꿈을 잠시 마음에 묻어두기로 했다.

 1학년을 마치고 겨울방학이 되면서 시작한 안드로이드 앱 개발 공부는 여전히 밑바닥을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2학년 1학기가 되어 예정대로 기계과에 진학하여 기계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남는 시간에 안드로이드 앱 개발 공부를 지속했다. 하지만 온통 앱 개발에 마음을 뺏겨 기계과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대로는 둘 다 제대로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1학기를 휴학하고 개발 공부에 집중한 후에 2학기에 컴퓨터 공학과로 본 전공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개 아니지만 그 당시로서는 꽤 큰 결심이었다. 부모님의 걱정 어린 반대와 혼자서 주변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불안감을 넘어설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인 직감에 따라 결정했다.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두고두고 후회할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1학기를 시작한 지 두 주 만에 휴학한 후로부터 다시 2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의 약 6개월은 내 짧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처량하고 비참했던 시간이다. 일단 저질러 놓았으니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마음만 앞서서 조급해졌고, 반대로 성장은 더디게만 느껴졌다. 돌이켜봤을 때 내게 없어선 안될 시간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안내 음성도 없이 걸어가고 있는 듯했다.

 혼자 책과 구글을 뒤져가며 개발을 하면서 지치기도 했고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는다고 느꼈다. 누군가 개발을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면서 더 빨리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기관, 기업에서 실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주로 서울이나 부산에서 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서울이 낫겠지 싶어 서울에서 진행 중이던 삼 주 짜리 안드로이드 앱 개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친구의 좁은 방에 얹혀서 지내기로 하고 무작정 올라왔다.

 개발 교육 프로그램을 한 번 듣고 나면 실력이 폭풍 성장해서 원하는 앱을 다 만들어 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현실에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삼 주 짜리 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현장의 분위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비슷한 또래와 수업을 듣는 것에 익숙했는데 그곳의 연령층은 평균적으로 삼십 대를 웃돌았다. 그 교육 프로그램의 목적 자체도 본인의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빠르게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었던 것 같다. 조급한 마음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프로그램을 이수했지만 수업을 듣는 내내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친구의 자취방과 교육장을 매일 지하철로 오가며 '엄청난 성공 그런 건 이제 모르겠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만드는데 온통 시간을 쏟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만이라도 빨리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절대 지금의 날들을 잊지 않고 감사히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사람은 제각기 절실하지만 세상은 일관적으로 완고하다. "안돼 돌아가"라고 말하는 서울을 뒤로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되 하루하루 온전히 개발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가고자 애썼다. 여러 방황 끝에 알게 된 것은 해야만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것도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종종 주변에 누군가가 개발을 시작할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조언을 구한다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한다. "하루에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좋으니 스스로에게 적정한 시간을 정해두고 꾸준히 개발에 집중해보세요. 책을 보든 구글링을 하든 유튜브 영상을 보든 다 좋습니다. 돌이켜 봤을 때 방법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4. 작지만 소중한 성과들 (기숙사에서 하와이까지)
5. 학교는 거들 뿐
6. 출시를 향해
7. 출시 후 일주일
8. 5분의 대화
9. 겨울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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